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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이야기/습작(my story) (28)
사람과 사람사이(사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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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부터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매 주 기타를 배우게되었다. 나에게 기타란 언젠가 잘 치고 싶은 악기이며, 멋지게 공연도 해보는 게 꿈이다. 지금까지 기타 레슨은 많이 받아봤다. 대학교 때부터 몇 번인지 거의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이 배우러 다녀봤지만 실력은 엉망이다. 대학교 때에는 클래식 기타 학원을 가서 배웠는데 너무 어려워서 2달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였다. 교사가 된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수업시간에 동기유발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면 좋아할 것 같아서 실용음악학원을 등록하여 기타를 배우러 다녔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찾다가 수락산 역 근처로 다녔었는데 여기서도 얼마를 다니지 못하고 포기를 했다. 왜 포기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가 않는다. 짐작하건대 당시 나는 마석에서 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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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각장애인이다. 6살에 장애판정을 받았고 지금 내 나이가 40살이니 장애 경력 35년 차인 셈이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보면 부담을 갖고 어떤 말을 걸어야 할지 너무나도 조심하곤 한다. 장애인과 마주하면서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망설이기도 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불러도 된다. 배려하고 존중해준다는 명목 하에 장애우라는 용어는 삼가는 게 좋다. 처음 본 사람에게 우리는 친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지 않은가? 그냥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시각장애인, 듣지 못하는 사람은 청각장애인,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지체장애인이라고 부르면 된다. 용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호칭이 가장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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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말이다. 어린시절 친구들의 생일은 늘 양력이라 부러워했었다. 잊혀지지도 않고 기억하기도 쉬워서였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의 연세는 친구들의 부모님에 비하여 평균적으로 10살이상 많은편이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세대에서는 주민등록에 올리시기를 대체로 음력으로 올리셨기에 우리 형제들의 출생신고도 음력으로 하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삼형제 중에 나만 주민등록에 정확히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음력생일을 받아들인 것은 아마도 스무살이 넘어서였던 것 같다. 나의 생일을 굳이 양력으로 하고 싶지 않아졌다. 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정말 친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인것도 같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부모님이 정해주신것인데 내가 억지로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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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라디오의 만남은 1989년도 기숙사에 들어가면서이다.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라디오를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룸메이트 형들이 듣는것만 보았지만 90년도 2학년에 올라가면서 부모님께 사달라 하여 30000원 정도 한 LG라디오를 갖게 된다.. 라디오만 나오는 것이 아닌 테이프도 들을 수 있는 제품이며, 심지어 TV도 들을 수 있는 제품이었다. 생각해보니 라디오가 아니라 녹음기였다. 녹음기를 산 후 처음으로 산 테이프는 변진섭 2집이었다. 희망사항과 너에게로 또다시, 숙녀에게 등이 수록된 것이었다. 그 후 이상은 테이프도 큰형이 사줬고 나를 사주면서 형은 이문세의 앨범을 구입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로 전하세 예수라는 CCM 테이프도 형이 사면서 나도 즐겨 듣게된다. 처음으로 알게 된 라디오 채널은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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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꼭 구매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니 소비해야하는것들이 종종 있다. 소비를 꼭 해야한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인데 중요한 부분에 소비를 하는데 우리는 아까워하곤 한다..내가 생각하는 중요하지만 소비함에 있어 아깝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몇 가지 말해보려 한다. 첫째, 이발비이다. 남자의 경우 보통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이발을 할 것이다. 보통 이발비는 저렴한 곳은 8000원 정도부터 브랜드가 있는 곳의 경우 25000원 이상도 있는 것으로 안다. 보통 고가의 금액을 지불할수록 헤어스타일이 잘 나오기도 하지만 뭐 꼭 그렇지도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도 몇 년 전만 해도 머리 잘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머리숱이 적은 편이고 머리카락이 얇은 편이라 손질을 잘해주는 곳에 가면 아무래도 더 풍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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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갑자기 운다. 갑자기 웃기도 한다.. 갑자기 소리도 지른다. 갑자기 옹알이도 한다. 옹알이하다가 갑자기 잔다. 자다가 갑자기 깬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도 한다. 갑자기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한다.. 갑자기 나가자고 한다. 갑자기 쉬 마렵다고 한다. 갑자기 응가 마렵다고 한다.. 갑자기 엄마가 밉다고 한다.. 갑자기 아빠가 나쁘다고도 한다.. 갑자기 엄마를 사랑한다고 한다. 갑자기 물놀이하자고 한다. 물놀이한 후 갑자기 아빠에게 업히더니 잠들었다. 갑자기 우리 아기가 너무 예쁘다.
운동신경이 좋았던 나 난 지금까지도 살면서 말랐던 적이 없다. 늘 통통했고 잘 먹었으며, 입맛이 없던 적도 없는 것 같다. 환절기마다 감기는 잘 걸렸지만 병원에 입원하거나 크게 아픈 적도 없다. 태어날 때에도 우리 또래들과는 달리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태어나긴 했지만 형제 중에 가장 튼튼한 체격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크면서도 작은형과는 4살 차이인데 거의 같이 크고 체격이 비슷하다 보니 자꾸 이겨먹으려고 싸우고 했다. 형이 작은 이유는 워낙 약했었고 9살 때 심장수술을 하면서 성장이 더디고 약하게 크긴 했다. 동네에서도 눈이 좋지 않아도 친구들과 달리기하면 늘 1등을 할 정도이고 키가 크지 않았지만 다부진 체형에 힘이 좋은 편이었다. 위로 형이 2명이나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친구들이나 형들이 날 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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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오래전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벌써 30년이 넘은 일이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남겨본다. ~~~~~~~~~~~~~~~~~~~~~~~~~~~ 1989년 8살 때 나는 서울맹학교 기숙사를 들어갔다. 1988년 7살 되던 해에 취학통지서가 나와서 일반학교에 입학했었다. 하지만 난 6살 때 갑자기 눈이 나빠졌고 안과에 가보니 시신경이 말랐다며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난 그게 뭔지도 모르고 눈이 나쁘다는 생각도 안 났던 것 같다. 부모님은 어찌나 슬퍼하시고 속상해 하셨는지 모른다. 7살 때 동네 녹촌분교에 입학을 했었지만 맨 앞에 앉아도 칠판이 보이지 않았고 봄소풍을 가서는 길을 잃고 말았다.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퇴 권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당시 기분이 나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