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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버지 본문
나의 아버지는 우리 나이로 83세이시다. 호적상 1941년 1월생이시지만 실제로는 1940년생이시다. 추석에 본가에 방문했을 때 아버지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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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버지는 4형제셨다.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하지만 1965년 전후로 돌아가신듯하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술으르 건하하게 취하시면 종종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었는데 이번만큼 자세하게 말씀해주신것은 처음이다.
할아버지는 4형제 중 셋째셨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셨고 6.25를 경험하신 후 60년대 초중반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53세 혹은 54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는 형제 중 고생이란 고생은 혼자 다 하셨다. 일제 강점기 징용을 끌려간 사람은 형제 중 유일하시다. 첫째는 장남이라 안되고, 둘째는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라 안되었다. 넷째는 막내라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징용은 셋째가 가야했다. 언제 가셨는지 얼마를 가셨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끌려간 곳은 함경도의 어느 탄광촌이었다. 어두운 지하에서 매일 일을 하였다. 어느날 탄광에 갇히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는 1 달정도를 그 안에서 버텼다. 살고 싶어서 입고 있던 삼베옷을 뜯어 먹었다. 결국 빠져 나왓고 탈출하였다. 죽을 것 같았지만 죽더라도 부모가 계신 곳, 가족이 잇는 곳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쪽만 바라보며 걸었고 개경까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어떤 독립운동가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사정을 들은 독립운동가는 서울에 가서 유씨를 찾으라며 추천장같은 무언가를 주셨다. 그것을 들고 서울에 갔고 유씨를 만나게 된다. 사정을 듣고 유씨는 그의 고향으로 갈 차비를 준다.
그의 고향인 여산으로 도착한다. 아버지의 나이는 아마도 3살정도로 기억된다. 할아버지는 서른살정도로 추정된다. 할아버지는 자식들과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한다. 아팠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아픔을 자식들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53세 혹은 54세정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본인의 나이가 50대 중반부터 본인의 삶은 얼마남지 않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유인즉 할아버지가 그 나이 쯤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43세에 낳았으니 11살 혹은 12살정도부터 이런 말씀을 하신것이다.
당시 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는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몇살까지 살았는지 기억하려 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장군도 54세정도 살았고 삼국지의 제갈공명도 54세까지 살았다고 알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 할아버지도 이정도 나이까지 사셨으니 이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위인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친척들에게 섭섭하고 화가난다. 물론 이 마음도 아버지에게 느낀 감정이 이입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형제들은 셋째가 대신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였고 제일 먼저 죽었는데도 조카들에게 도움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모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다. 가난하였고 할아버지가 가정에 신경을 잘 쓰지 못한 부분도 있던듯하다.
아버지는 2남 4년 중 둘째이자 장남이시다. 여섯째가 작은 아버지이신데 아버지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절에 들어가려했지만 장남이고 독자였던터라 그러지도 못하셨다. 포기한 후 막내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나이 차이는 무려 17살이다.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든 형제들을 출가시킨 후 장가를 가신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길을 가신것인지 고생이란 고생은 참 많이도 하셨다. 그렇게 미워한 아버지의 형제들인데 경조사는 모두 다녀오셨다. 고모들과 아버지의 지인들은 아버지에게 이제 그만 다니시라고도 하셨다. 알아주지도 않고 나쁜 사람들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사람의 도리라며 말이다.
아버지는 예전같지 않으시다.
꼬장꼬장하시던 아버지,
음주를 하면 말씀도 많고 노래도 잘 부르시던 아버지,
예의를 중시하시던 아버지
이제는 자주 입원하시고 약을 밥보다 더 많이 드시는 지라 기력도 없으시다.
그 좋아하던 술도 안 드신지 5년도 넘으신듯 하다. 종종 기분이 좋아서 사람들이 권하여 조금 드시면 힘들어서 고생하신다.
할아버지는 운명이라 생각하셨겠지만 늘 손해보시고 사듯하다. 아버지도 그렇다. 아버지도 늘 손해보고 사셨다. 이기적이지 않아 어머니와 늘 갈등이 있었다. 난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 나 역시 내가 이기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손해 봐야한다면 내가 그러려한다. 아내는 이런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 아내는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이런 마음이 바뀐다. 나도 가정이 우선이려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만을 위한 사람이 아닌 조금이라도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아이도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가치배우고 따르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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