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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사사사)
내 친구 C 본문
C는 나와 27년 지기이다. 6학년 때 전학을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첫 모습은 이랬다. 덩치가 컸고 키도 나보다 10cm 이상 차이가 났다. 피부는 알비니즘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하여 온몸이 하얗고 털까지 백색이었다. 늘 모자를 쓰고 다녔고 안경도 쓰고 다녔다.
우리는 맹학교를 다녔다. 그는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왔는데 일반학교에서는 가장 안 보이던 친구가 이곳에서는 가장 잘 보이는 학생이었다. 나도 전혀 안 보이는 친구들에 비해서는 조금 봤는데 나는 글씨도 못 보고 사람 얼굴도 잘 분간 못하던 거에 비하면 C는 가까이에서는 글도 다 읽고 사람 얼굴도 거의 구분을 하였다.
그와 나는 27년간 늘 가깝게 지냈다. 나는 사람과 빨리 친해지지 못하던거에 비하여 주위에 늘 친구가 많았다. 다른 한편으로 난 리더십도 부족하고 우유부단한 아이였다. 친구들이 하자는건 잘 들어주고 재미있게 놀았지만 친구들 중에는 가장 가난하였다.
그래서였을까?
C는 나를 보며 가난한 친구는 처음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월세에 사셨고, 옷도 많이 물려 입고 다녀서 알았나보다.
C는 조금 까칠했다. 피부가 하얀 탓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도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C는 그 정도는 보았기 때문에 더 까칠했던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C는 모르는 사람들이 쳐다보는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나와 둘이 있을 때 사람들을 보며 욕도 하고 화도 냈었다. 난 옆에서 괜히 쫄곤 했다. 나에게 그런것도 아닌데 괜히 무서웠던 것 같다.
C와 언제부터 친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학교 때부터 늘 가깝게 지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진짜 친해진 것 같다. 고3 때 휴대폰을 처음 장만한 후로는 우린 매일 전화나 문자를 했다. 아니 사실 나보다 C가 자주 했다. 때로는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정임을 알기에 20대 중반 정도부터는 부담스럽지 않았던것 같다.
20대 부터는 C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봐도 화를 내지 않았다. 피부가 하얗다며 모르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면 고맙다고도 하고 농담도 하며 변하였다.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어도 우리는 자주 만나고 통화도 하며 어울렸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와이프의 눈치를 보고 나 역시 눈치를 보며 우리는 예전만큼 자주 보거나 통화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이다.
C의 어머니는 60대 중후반이시다. 그는 아빠보다 엄마를 훨씬 더 좋아하고 사랑한다. 아니 아빠를 싫어할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에 아니 1년반 전에 어머니께 암이 발견된 것이다. 어머니도 힘드셨겠지만 C는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전화로 혹은 문자로 본인의 마음 아픔을 토로하곤 했는데 내가 불편해하는 것 같았는지 점점 토로하는 일이 줄었다. 어머니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어떤 치료를 했는지는 잘 모른다. 여러 치료들을 하면서 어머니는 더 힘들어하시게되었고 최근에는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기로 하셨다고 한다. 사실 치료를 안한다기 보다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것 같다. 1년 8개월간 비뇨기과에서 종양내과를 거쳐 최근에는 완화의학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완화의학과는 거의 마지막 치료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정도이지 계속 치료를 할 거라고 한다.
최근의 일이다. 어머니가 요즘은 허리가 너무 아프셔서 쇼파에 누워 있다가 침대로 이동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하신다고 말해주었다. C가 나에게 해 준 말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난 엄마가 안아팠으면 좋겠어. 진통제를 많이 먹어서라더라도, 그래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돌아가실 때까지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어.”
라고 톡을 보내왔는데 마음도 아프고 속도 상했다. 우리 부모님이 C의 어머니보다 10~15살 정도 많으셔서 당연히 우리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실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C의 어머니가 돌아가신것은 아니지만 병원에서나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C는 그래도 고맙다고 말한다. 엄마가 처음 병원에서는 6개월 정도 살거라 하셨다고 했었는데 그래도 20개월을 넘게 살아계셔 준게 너무 고맙다고 말이다.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 C의 어머니가 아픈게 나도 너무 싫다. 내 친한 친구 C가 아픈것도 너무 싫다. C와의 추억은 참으로 많다. 기쁠 때 함께 기뻐했고 슬플 때 함께 슬퍼했던 우리인데...
지금 예전처럼 함께 마음을 잘 나누지 못하여 미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친구와 자주 통화하기, 종종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기 정도뿐이다..
2년 전만 해도 우리 아버지의 건강을 더 신경 쓰던 우리의 사이가 이제는 C의 어머니가 더 아픈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까칠하지만 싹싹한 친구!
나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일지라도 그 녀가 나를 좋아한다면 양보할 친구!
고민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주는 친구!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절대 빌려주지 않지만 나에게는 이유 불문하고 말만 하면 빌려주는 친구!
내일은 자기 일보다 더 나서 주는 친구!
C는 금요일이 되면 어머니의 집으로 간다. 오늘이 금요일이다. 어머니가 이 번 주말에는 식사도 잘하시고 아픔도 줄고 조금은 더 웃을 수 있는 시간이 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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