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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습작(my story)

종로의 추억(제2의 고향 종로)

C드레곤 2021. 6. 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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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답십리이다. 4살 때 남양주 마석으로 이사를 갔으니 답십리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3살 때 길을 잃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나의 기억이 아닌 들은 이야기이다.

마석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국민학교를 입학했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다며 1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퇴하게 된다..

이듬해에 서울 종로에 있는 서울맹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고 고등학교까지 이 곳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나에게는 부모님이 계신 남양주 마석이 고향이다 시 피하면서도 종로에 있는 맹학교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 시절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자주 갔었다. 당시 그 곳에는 외국인도 많이 왔었다. 그들의 이질적인 언어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들 특유의 냄새도 신기했다.

나의 고향은 종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살 때부터 지낸 곳이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친구들과 만나고 놀던 곳도 종로가 가장 많았다.

학교가 청와대 앞이라 초등학교 입학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학창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테이프나 씨디를 구입할 때에도 종로로 갔다. 당시 길보드 차트라하여 리어카에서 테이프를 사기도 했는데 1000원부터 4000원까지 가격도 다양했다. 조금 큰 후에는 씨디도 사러 갔다.. 씨디 가격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으로 가려고 발품을 판 것인데 가장 많이 간 곳은 '씨디뱅크'였다. 아마 더 싼 곳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곳이 가장 저렴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유는 지하철 역에서 찾기 쉬운 점도 한 몫했으리라 생각된다.

고등학생이 되어 졸업을 앞뒀을 때는 술을 종종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신분증 검사를 한터라 우리는 신분증을 두고 왔다고 늘 거짓말을 하였다. 대신 주민번호를 대면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나와 친구들은 친형 혹은 가까운 형의 주민번호를 외우고 다니곤 했다. 걸릴까 봐 두근대는 마음으로 몇 번을 거짓말하며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없어진 호프집이지만 당시 가장 많이 간 곳은 '어쭈구리'라는 곳이다. 안주가 저렴하고 많이 나와서였다. 종로3가역 인근에 있는 곳으로 2층이었는데 창 밖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저렴해서 자주 간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재미있는 술집을 찾아다녔다. 기억에 남는 곳은종각역 인근에 있던 '곰팡이'라는 술집이었다. 조금 비싸긴 했는데 이벤트를 하여 한두 번 갔었다. 이벤트는 레크레이션 강사 같은 사람이 시간이 되면 나와서 퀴즈를 내고 맞추면 술이나 안주를 서비스로 주는 이벤트였다. 재미있었던 부분이라면 답을 알아 손을 들 때 ''이새끼야'라고 크게 외치라고 한 것이다.. 당시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그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그곳을 갔던 것 같다. 비싸서 였겠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술집은 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가봤지만 망했는지 그 호프집은 사라졌다.

그 후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호프집보다는 '피맛골'로 옮기게 된다.

이제는 피맛골도 사라졌다고 하는데...

나에게 종로는 술도 많이 마신 곳이지만 약속 장소로도 많이 잡던 곳이다.

나와 비슷한 추억이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특히 종각역 4번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정말 많을 것이다.. 보신각종이라는 랜드마크는 누구에게나 쉽게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 역시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많이도 기다렸고 기다리게 한 곳이다.

데이트 역시 많이 한 곳이 종로이다. 광장시장에서 부터 광화문까지 걷기도 했고,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동대문까지 걸은 적도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또 명동에서 시작하여 종로로 걸은 것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에게 1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누군가와 만나려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은 종로였다.

이제는 종로도 많이 변하였다. 자주 가지도 못할뿐더러 사람들도 예전만큼 많지 않은 것 같다.

종각역의 피아노거리가 생각날 때도 있고,

인사동을 갈 때 랜드마크로 많이 말하던 금강제화와 지오다노는 나의 추억의 상징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를 읽었었다. 그 책에도 종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요조 역시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인지 종로에 대한 애착을 많이 보인 게 기억난다.

요즘에는 김애란 작가의'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여기에도 종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의 책을 읽다 보니 나 역시 같은 추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과 기쁨이 있던 종로,

슬픔과 눈물도 있던 종로,

진로를 고민했고 사랑을 했으며, 이별도 했던 종로!!!!!!

우정을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 종로,

이제는 예전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또 가고픈 장소 종로이다.

아쉽기도 하고 그리운 장소 종로를 나는 사랑한다.

신촌이나 강남처럼 세련되고 부유한 느낌이 아니어서 더 좋았던 장소 종로!

역사와 전통이 있어 좋았던 장소 종로!

나에게 종로는 제2의 고향이다.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난 곳 종로,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곳 종로

오랜만에 추억 속의 종로를 더듬어본다.

생각난 김에월의 '종로에서'도 한번 들어볼까.

얼굴 없는 가수로 라디오에서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 항상 헷갈렸던 것 같다. 5월의 종로에서인지, 종로의 5월에서인지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PHKJjC4O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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