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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습작(my story)

내가 좋아하고 좋아했던 것 들

C드레곤 2020. 10. 1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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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좋고 싫음을 잘 표현하지 않고 살아왔다. 좋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했고, 싫으면서도 싫지 않은 척하며 살아왔다.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에 취학 전에는 무척이나 활달했고 낯가림도 없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노래한번 해보라고 하면 빼지도 않고 아무 노래나 불렀던걸로 기억이 난다.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그게 좋아서 또다른 노래들을 부르곤 했다. 아마도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시각장애인임을 인지하면서 맹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살면서인 것 같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그 곳에서 적응하다보니 표현도 잘 하지 않게 된 것 같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답만 하고 지내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럼 제목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한번 나열해 보자.

첫째, 노래를 참 좋아했다. 듣는것도 좋아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들은 다 따라 불렀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박남정, 소방차, 구창모, 전영록, 이문세 , 변진섭 등의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르는것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잘 부르지 않게 되었고 혼자 있을 때만 조용히 부르게되었다. 그렇게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시작된 것 같다.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잘 하지 않았지만 듣는 것은 여전히 좋아했다. 밤마다 형들과 함께 라디오를 들으면서 노래들을 들었고 좋아하는 노래들은 공테이프에 녹음도 많이 하였다.

둘 째, 라디오를 참 좋아했다. 노래를 좋아했으니 당연히 라디오를 사랑할 수 밖에 ...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 노래도 많이 들었지만 라디오 드라마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스포츠 중계도 듣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듣기도 하였다. 모든 방송사의 여러 프로그램들의 채널을 돌려가면서 좋은 노래는 없는지, 재미있는 초대손님은 나왔는지 찾아가면서 들었다. 그렇게 나의 잡학이 늘기 시작하였다.

셋째, 프로야구이다. 1990년도 초등학교2학년 때 처음으로 형들이 나에게 너 야구팀 어디 좋아해?”라고 물었는데 당시 나는 응원하는 팀도 없었고 야구팀도 잘 몰랐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LG할래? OB할래?”라고 물어서 고민을 하다가 “OB할게.”라고 하면서난 OB베어스를 응원하게 되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OB베어스의 팬이 되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학년 때 함께 살던 형들이 해태타이거즈를 좋아하여 매일 해태의 경기를 보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의 고향이 전북 익산이기도 해서인지 나도 그 때부터 해태를 응원하게 되었다. 그 해의 경기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1993년도 해태가 우승하던 때부터 프로야구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기 시작한다. 지금은 은퇴한 야구인들이지만 당시 신인은 이종범, 이대진선수를 비롯하여 현재 감독으로 활동하는 이강철선수, 기아 구단주인 조계현선수, 해설자로 활약중인 이순철선수,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선동열선수 등 화려한 선수들을 가지고 우승을 한 시기에 난 프로야구에 빠지기시작하였다. 이후로 난 매일 프로야구를 보면서 저녁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넷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삼국지이다. 삼국지를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정비석의 삼국지를 처음으로 읽은 후로 이문열의 삼국지, 김홍신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 이외에도 새로 나온 삼국지가 나올 때마다 다 읽지는 않아도 일부라도 더 읽어보곤 하였다. 작가마다의 특징을 알고 싶기도 하였지만 나의 삼국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고자 다시 읽기도 한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유튜브로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를 비교하여 설명해주는 영상을 종종 보고 있다. 삼국지를 통하여 우리나라 역사소설에도 관심을 갖게된다. 텔레비전을 통하여 처음으로 본 역사드라마는 조선왕조 500년이다. 당시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북선의 모습이다. 이 후로 '삼국기', '용의 눈물', '왕과비', '태조 왕건', '대조영', '연개소문'등의 역사드라마에 심취한다. 연개소문과 대조영은 중학생 때 유현종작가의 장편소설로 먼저 읽은 터라 비교하면서 보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 보았다. 물론 비슷한 부분도 있었지만 드라마와 소설은 다른 부분도 많았다.

다섯째, 역사소설이다.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삼국지를 읽은 후로 역사소설에 빠지게된다. 삼국지와 비슷한 초한지를 읽게되었고 그 보다 앞선 시대인 열국지와 사기를 읽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소설은 유현종작가의 연개소문과 대조영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웅장하고 위대한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조선왕조 500, 발해를 꿈꾸며, 등도 읽게 되었다.

여섯째, 밴드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은 좋아했지만 악기를 배워 본적이 없는 터라 어린 시절 부모님이 악기하나 배우게 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었다.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갖게되면서 틈틈이 통기타를 배웠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친한 형이 밴드를 하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보고 드럼을 치라고 하였다. 나는 당시 드럼을 치고는 싶었지만 드럼을 쳐 보지는 못하였다. 밤마다 밴드를 하자고 두명의 형이 술을 마시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못한다고 계속하였지만 한다고 할 때까지 형들은 전화를 하였다. 밤마다 너무 시달린 나머지 알겠다고 배워서 하겠다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난 약속은 하면 지켜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다음 주부터 드럼을 배우게된다. 드럼을 배우면서 우리는 팀을 만들게 되었고 매 주 모여서 연습을 하게되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엉망이었다. 당시 우리팀의 이름은 '갈팡질팡'이었다. 팀명 탓인지 우리는 1년을 채 하지 못하고 여주에 있는 라파엘집 여름 행사에서 3곡을 발표하면서 해체하게된다. 이후로 나는 밴드를 더 열심히 하게되었다. 한 때는 1주일에 3팀을 한 적도 있었다. 프로젝트로 한 팀도 있었고 몇 년간 꾸준히 한 팀도 있었다. 비록 결혼을 하면서 그리고 아기를 낳으면서 이제는 밴드를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또다시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기약없는 꿈을 갖고 있기는 하다.

일곱째, 사람에 관심이 많다. 이건 위에서 삼국지를 읽은 후부터인 것 같다. 사람의 이름과 이력을 검색해 가며 수집하였다. 수집이라고 하여 모은 것은 아니고 그냥 찾아서 기억하였다. 예를들어 야구에 관심이 많을 때에는 야구 케스터에 관심이 많아서 방송사 별로 케스터의 이름을 수집하였고 내 나름대로 제일 잘 하는 아나운서를 순위 매기기도 하였다. 성우에 관심이 있을 때에는 성우들의 목소리와 이름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분류하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방송사 별로 아나운서와 기자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하였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역대 서울시장의 이름, 국무 총리의 이름을 검색해 본적도 있다. 또 방송사 별 개그멘들의 기수도 검색하여 나이를 외운적도 있다. 스고보니 좀 창피하긴하다.

여덟째,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어린시절 우리집은 가난하고 부모님이 내 또래친구들의 부모님의 연세헤 비하여 10살 정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피자 한판 시켜먹은 적이 없다. 친구들은 치킨을 많이 먹었다는데 우리집은 늘 닭볶음탕이었다. 회도 20대가 돼서야 먹었다. 취직을 한 후로 나는 맛집을 찾아 많이 다녔다. 유명한 곳은 찾아다녔고 먹어보려 했다. 서울 3대 족발집, 유명한 중화요리집, 순대타운, 떡볶이집, 설렁탕 집 등등...

아홉째, 모임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것도 좋아한다. 술자리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술자리를 좋아하는것일 수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아무말 대잔치도 좋아한다. 친한 친구들과 목적 없는 주제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단둘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좋아한다. 한 때 친구와 통화하면 1~2시간정도는 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하였다. 주제는 다양하다. 단둘이 만날 때에는 농담보다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된다. 여럿이 모일 때에는 주로 가벼운 이야기를 하게된다. 내가 선호하는 모임 인원은 약 4명정도이다. 서로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기 때문이다. 나는 모임이 많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모임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이 너무 많으면 피곤할 수 있다. 모임의 양과 질은 본인이 선택해야한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있겠지만 생각날 때 그냥 한번 적어보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면서 산다면 그만큼 삶의 활력소는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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