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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사사사)
기숙사에 처음 들어간 날 본문
오늘은 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오래전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벌써 30년이 넘은 일이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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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살 때 나는 서울맹학교 기숙사를 들어갔다.
1988년 7살 되던 해에 취학통지서가 나와서 일반학교에 입학했었다.
하지만 난 6살 때 갑자기 눈이 나빠졌고 안과에 가보니 시신경이 말랐다며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난 그게 뭔지도 모르고 눈이 나쁘다는 생각도 안 났던 것 같다.
부모님은 어찌나 슬퍼하시고 속상해 하셨는지 모른다.
7살 때 동네 녹촌분교에 입학을 했었지만 맨 앞에 앉아도 칠판이 보이지 않았고 봄소풍을 가서는 길을 잃고 말았다.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퇴 권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당시 기분이 나빴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걱정이나 속상함 없이 놀았고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이듬해 2월 말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어디가 안좋으셨 던 지 침을 맞으러 다녀오셨고 침사 할아버지가 맹인이어서 나의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6.25 때 실명을 하시게 되셨고 종로에 있는 서울맹학교를 졸업하시고 침을 놓으며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며칠 후면 3월인데 입학절차도 밟지 않고 부모님은 남양주 마석에서 종로구 신교동까지 무작정 가셨다.
당시 버스가 많지도 않은더라 거의 2시간 정도 걸렸다. 가자마자 상담을 하시고 난 서울맹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 후 나는 어머니와 때로는 아버지와 통학을 하였다.
나도 힘들었지만 부모님은 일을 하셔야 하는데 나 때문에 하루를 쓴다는 것은 지속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신 후 나를 기숙사에 넣게 된다.
빨리 넣고 싶어 하셨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적응할 수 있게 시간을 더 끄신 것 같다.
등하교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부모님도 일을 하셔야 하는 터라 난 입학 후 2달 만인 5월 3일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다.
보자기에 이불을 싸고 큰 가방에 옷을 넣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 하루가 난 너무 무서웠다. 엄마와 아빠 없이 자는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 외에 기숙사 방에는 형들이 총 5명이 있었다.
처음 보는 형들은 무서웠고 다 나보다 안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날 밤잠을 잤고 아침에 난 다시 나의 짐을 쌌다.
오늘만 자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오셔서 이불은 싸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난 너무너무 무섭고 속상했다. 오늘만 자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그 이불 짐을 푸는데 울음이 터졌다.
다행히 오늘은 어린이날 전 날로 운동회만 하고 집으로 가는 날이었다.
1학년 때의 기숙사 기억은 많이 나지 않지만 몇 가지가 있다면
어느 날 고3 형이 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난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
그런데 그 형은 나의 뺨을 때리며 너 이름도 모르냐고 꾸짖어서 더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형은 장난치듯 나에게 물었던 것 같지만 어린 나에게는 무서운 기억이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어릴 때는 습관적으로 욕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방 형이 나에게뭐라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화가 났거나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습관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그 형은 꼬맹이가 욕을 하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났던 것 같다.
방에 있던 멀티탭을 꼬았고 나에게 그 줄로 혼을 내주려 한 것 같다.
난 무서웠고 울면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결국 끌려 나왔고 많이 맞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무섭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이 후로 난 욕을 거의 안 하였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어느날 밤 난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한다. 감기 같기도 하지만 내가 너무 아파하니 형들이 와서 안마도 해주고 침도 놔주려 했던 것 같다.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이 밤늦게 오셨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어머니가 "우리 아들 죽어요"라고 하시면서 병원까지 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열은 40도까지 올랐었고 병명은 홍역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질병으로 고통을 기억한 때인 것 같다.
그 후로 난 기숙사에서 잘 적응하게 된다.
물론 3학년 때까지는 방학만 마치고 가면 무섭고 외로운 마음에 울면서 기숙사를 안 가려고 하기는 했지만 금세 학기가 시작되면 친구들과 형들과 재미있게 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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